당신은 왜 미국에 오셨습니까?
1492년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사건에서 시작하여 1620년부터 이뤄진 청교도 이주를 거쳐 1776년 7월 4일 영국의 식민지를 벗어나 미국의 국가독립을 선언하고 지금에까지 이른 미국. 이 미국의 역사 속에 ‘기독교’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청교도들은 구교에 의해 자신들의 신앙이 핍박을 받게 되자 종교의 자유를 위해 목숨을 걸고 그들의 나라를 떠나 새로운 땅에 상륙, 교회를 세웠고 이들의 ‘청교도 신앙’은 미국이 짧은 역사를 지녔음에도 부강하고 모범적인 민주국가의 체계를 갖추는데 원동력이 됐다.
이렇듯 목숨까지 내걸면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려고 했던 미국이지만 ‘자본주의’에 근거한 죄악의 뿌리, 즉 인간의 존엄성을 멸시하는 노예제도, 영토를 넓혀가며 원주민인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무자비한 학살, 금광을 찾아가는 물질주의의 만연 등의 모순을 낳으며 영적인 고사상태에 이른다.
◇미국을 터치한 성령의 손길
그러나 영적으로 침체된 미국은 위기 때마다 세 번의 거대한 성령의 손길을 경험한다.
제1차 대각성 운동은 1730년말 불이 붙어 1740년대 초반에 절정에 달했다. 동부에서는 스토다드에 이어 에드워즈 목사, 중부에서는 프레린귀센으로부터 윌리엄 텐넨트/길버트 텐넌트, 조지 휫드필드 목사에 의해 뜨겁게 타올랐다.
제1차 대각성운동은 미국교회를 강화시켰다. 1740년 이후 20년동안 뉴잉글랜드 지방엔 150개의 새로운 교회가 세워졌으며 5만여명의 교인이 증가했다. 미국 중부 성령운동으로 새롭게 타오른 ‘새빛(New Lights)’장로교회와 침례교회가 대폭 증가하였고, 그 영향으로 훗날 남부침례교의 놀라운 성장의 기초를 마련하였다. 이 시대에 설립된 9개의 대학 중에 6개가 대각성운동의 결과로 태어났다. 프린스턴 대학도 자신의 농장에 학교를 세워 신학도를 교육했던 윌리엄 텐넨트의 ‘통나무 대학’으로부터 영향을 받았으며, 루트거즈(Rutgers), 펜실베니아, 브라운 대학이 모두 대각성운동의 영향으로 세워졌다.
미국의 제2차 대각성운동은 대략 1795년부터 1835년경까지 이어졌다. 제1대각성운동보다 훨씬 그 기간이 오래 지속되며, 두 단계로 나누어 일어났는데 미국과 세계에 끼친 영향은 지대했다. 제2차 대각성운동은 미국에 쏟아진 축복이었다. 선교사를 외국에 파송하고, 학교와 대학을 세우고, 수만 명이 회심하게 되고, 반 노예운동, 여권신장, 형무소 개선, 금주운동 등 많은 개혁이 일어났다.
◇3차 대각성 운동과 한국의 기독교의 연관성
그리고 1857년과 1858년 뉴욕 맨하탄과 필라델피아, 뉴저지를 중심으로 일어난 제3차 대각성운동. 이 운동은 이전의 대각성 운동과는 다르게 우리 한국 기독교와 밀접한 역사적인 관계 속에 있다.
미국과 세계를 영적, 도덕적으로 살리기 위한 회개와 기도운동이자 영적 대각성 운동인 JAMA(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All nations)를 전개하고 있는 김춘근 대표는 미국의 제3차 대각성 운동과 한국 기독교와의 연계성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제3차 대각성 운동은 미국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을 구한 운동이었습니다. 3차 대각성 이후 미국은 대규모의 선교사들을 세계로 파송했습니다. 그들 중에 언더우드 선교사님과 아펜젤러 선교사님이 계십니다. 저는 언더우드 선교사님의 기도문을 읽으며 그가 우리 민족을 얼마나 사랑했는지 큰 충격을 받고 한없이 울었습니다.”
한국에 개신교 선교가 시작될 무렵, 조선땅은 메마르고 척박한 가난의 땅이었다.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에 도착한 것은 1885년 4월 5일, 25살의 청년 언더우드는 서양식 병원과 학교, 광혜원 등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가르쳤고, 이듬해 2월에는 조선 정부의 허락을 받아 고아들을 돌봤다.
그러나 무지한 조선인들은 ‘서양 선교사들이 아이들을 길러서 잡아먹으려고 한다’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먹을 계획이란다’ ‘아이들의 눈을 빼서 약에 쓰려고 한다’ 등 극악한 소문을 퍼뜨리며 그를 경계했다. 그럴 때마다 무릎을 꿇었던 언더우드 선교사가 서울 도착 몇 년후에 쓴 것으로 알려진 기도문은 조선땅을 향한 언더우드 선교사의 애끓는 선교열정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 그의 신앙을 그대로 느껴지게 한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았습니다. 그 넓고 넓은 태평양을 어떻게 건너 왔는지 그 사실이 기적입니다. 주께서 붙잡아 뚝 떨어뜨려 놓으신 듯한 이 곳,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보이는 것은 고집스럽게 얼룩진 어둠뿐입니다. 어둠과 가난과 인습에 묶여 있는 조선사람뿐입니다. 그들은 왜 묶여 있는지도, 고통이라는 것도 모르고 있습니다. 고통을 고통인줄 모르는 자에게 고통을 벗겨 주겠다고 하면 의심부터 하고 화부터 냅니다.
조선 남자들의 속셈이 보이질 않습니다. 이 나라 조정의 내심도 보이질 않습니다. 가마를 타고 다니는 여자들을 영영 볼 기회가 없으면 어쩌나 합니다. 조선의 마음이 보이질 않습니다. 그리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 순종하겠습니다. 겸손하게 순종할 때 주께서 일을 시작하시고, 그 하시는 일을 우리들의 영적인 눈이 볼 수 있는 날이 있을 줄 믿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하신 말씀을 따라 조선의 믿음의 앞날을 볼 수 있게 될 것을 믿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황무지 위에 맨손으로 서 있는 것 같사오나 지금은 우리가 서양귀신, 양귀자라고 손가락질 받고 있사오나 저희들이 우리 영혼과 하나인 것을 깨닫고, 하늘나라의 한 백성, 한 자녀임을 알고 눈물로 기뻐할 날이 있음을 믿습니다.
지금은 예배드릴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그저 경계와 의심과 멸시와 천대함이 가득한 곳이지만 이곳이 머지않아 은총의 땅이 되리라는 것을 믿습니다. 주여! 오직 제 믿음을 붙잡아 주소서.”(H.G언더우드)
◇기도로 일어난 미국의 제3차 대각성 운동
한국 개신교의 부흥이 100여년 전 스물 다섯 살의 청년 선교사 언더우드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면, 언더우드 선교사와 같은 수많은 선교사를 세계로 파송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제3차 미국의 영적각성운동은 48세의 젊은 사업가인 예레미아 랜피어의 기도로부터 시작되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 전인 1857년 9월 23일 정오. 뉴욕 맨하탄 지역 풀톤(Fulton)가에 있던 교회 3층의 아무도 없는 강의실에서 예레미아 랜피어가 홀로 부흥을 위해 하나님께 회개하며 기도하고 있었다.
세상은 혼탁하여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불어닥친 경제공항의 바람으로 경제적인 혼란이 도처에서 발생했고, 정치적으로는 노예제도로 인한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사람간의 증오심이 끓어오르는 시기였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종말론자 윌리엄 밀러가 1843년 3월 21일과 1844년 3월 21일 사이에 예수가 재림해 세상을 불로 씻어버릴 것이라며 세상을 현혹했다가 거짓으로 드러나 기독교 지도자에 대한 환멸을 느끼고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아 랜피어에게 기도의 동역자를 붙여주셔서 여섯명이 같은 기도를 시작하였다.
기도회를 시작한 후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 은행이 문을 닫게 되고, 그 파장이 미국 재계 전체에 큰 충격파를 던지게 되었다. 같은 해 10월 10일 뉴욕 증권시장이 곤두박질쳤다. 미국은 걷잡을 수 없는 경제공항으로 치달았고, 많은 증권 직원들과 브로커들이 실직했다. 도처에서 상점들이 문을 닫았으며 많은 사람들이 파산했다.
경제적인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랜피어의 집회에 참석하기 시작했다. 집회는 매일 계속되었다. 6개월 안에 1만여 명이 뉴욕의 여러 곳에서 매일 기도회를 가졌다.「뉴욕 타임즈」는 “목사 헨리 와드 비처는 벌톤 극장에서 3,000명의 사람들을 위해 예배 인도를 하고 있었다. 예배 도중에 비처 목사는 옆집에서 많은 사람들이 찬송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사람들이 술집에 모여서 기도회를 갖고 있는 것을 알았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작게 시작되었던 각성과 회개의 정오기도는 불같이 번져갔고 결국 1858년 5만명이 매일 모이는 기도운동으로 변하여 미국의 제3차 대각성 운동의 횃불이 되었다.
같은 무렵 필라델피아와 뉴저지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1857년 11월 23일 몇 명의 대학생들과 대학 졸업생들이 회개의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 수는 곧 20명, 30명, 60명으로 늘어났고 그들의 기도는 무엇인가 폭발할 것임을 예감케 했습니다. 모임은 4개월만에 더 이상 사람을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많아졌고 필라델피아에 있는 각 교회가 문을 열어 기도의 행렬에 동참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당시 돈으로 2000달러나 되는 큰 천막을 사서 1858년 5월 1일부터 연합예배를 보기 시작했고 이후로 4개월동안 캔버스 텐트 미니스트리에 참석한 인원이 15만명이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 당시 필라델피아 인구가 30만명 정도였다고 하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JAMA 대표 김춘근 박사는 “하나님께서 몇몇 알려지지 않은 평신도와 젊은이들에게 큰 부담을 주고 그들의 각성과 회개로 시작하여 미국의 제3차 대각성 운동과 부흥을 이루셨다”고 말하며 앞으로 올 제 4차 대부흥의 리더십과 오너십이 우리 한인들에게 있다고 강조한다.
◇God’s Kingdom Dream의 주역은 ‘우리’
김춘근 박사가 대표로 활동하고 있는 JAMA는 Jesus Awakening Movement for America/All nations의 약자다. 1993년 10월 28일부터 11월 1일까지 한인 크리스천 6명의 리더들이 모여 함께 기도하면서 시작한 이 JAMA 운동은 역대하 7장 14절 약속의 말씀을 바탕으로 코리언-아메리칸 크리스천들이 중심이 되어 미국과 세계를 영적, 도덕적으로 살리기 위한 회개와 기도운동이자 영적 대각성 운동이다.
“우리의 회개와 각성의 기도를 통해서만 하나님께서 미국에 대부흥을 내려주신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로 먼저 시작하라는 엄청난 소원을 부담으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앞으로 올 대부흥의 리더십과 오너십을 가지라고 하십니다. 지금까지 어느 민족이나 인종도 미국의 부흥을 위해 각성과 기도의 운동을 벌인 전례는 없습니다. 상상해보십시오. 미국의 제4차 대각성 운동이 우리 때문에 일어났다고 상상해보십시오. 미국이 회개함으로 부흥하여 미국의 모든 인력과 자원을 총동원하여 세계를 복음으로 섬기는 나라가 되었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왜 코리안-아메리칸이 미국을 깨우고 세계를 복음의 나라로 만드는 주역이냐는 의구심에 대한 JAMA의 대답은 명쾌하다. “하나님이 God’s Kingdom Dream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 보내셨다”는 것.
개신교가 조선땅을 밟은 이후 한국은 동학란, 청일전쟁, 민비시해사건, 노일전쟁 등으로 역사의 회오리를 맞이했고, 위기 속에서도 선교사들의 사랑과 희생은 그 어떤 폭풍우에도 꺼지지 않는 희망이 되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에까지 이른다.
‘한국 기독교사 연구’(저자 김양선)에는 1907년 평양 장대현교회에서 열린 부흥회 첫날 집회에 참석했던 정익호 장로의 후일 증언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길선주 장로)는 눈이 멀어 나를 보지 못했을 터이나 나는 그의 앞에서 피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놓은 것으로만 생각되었다. 전에 경험하지 못한 죄에 대한 굉장한 두려움이 나를 엄습했다. 어떤 사람은 너무 두려워 예배당 밖으로 뛰쳐 나갔다. 그러나 곧 되돌아와서 ‘오 하나님 나는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하며 울부짖었다.”
초대교회 마가의 다락방에 몰아쳤던 성령의 불길이 고스란히 옮겨붙은 평양 장대현교회의 집회는 초기 한국교회를 크게 부흥시킨 1907년 대부흥운동의 도화선이 되었고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가장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는 민족이 되어 있다.
그 사이 한국은 1910년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1950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수많은 학살과 수난을 겪으며 세계 각 곳으로 자연스레 흩어졌고, 근대에 들어서는 고아와 의사, 간호사와 유학생, 이민자들의 이름으로 전 세계 한인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다. 그 안에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은 미주 한인들이 있고.
“왜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국에 보내셨을까요?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서요? 절대로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 God’s Kingdom Dream을 이루기 위해 우리를 세계의 중심인 미국에 보내신 것입니다.” 김춘근 자마 대표의 말이다.
◇자마대회는 ‘영적인 디즈니랜드’
한국 기독교를 일으킨 평양의 대부흥이 100년 전 한국땅을 사모하고 한국의 복음화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미국 선교사들의 회개기도로 시작되었다면, 100년이 지난 지금, 미국을 복음으로 다시 일으킬 제4차 영적 대부흥의 주인공은 그 복음의 결실이 되어 미국땅에 살고 있는 바로 우리, 코리안-아메리칸 크리스천이라는 가슴 설레이는 ‘거룩한 비전’은, 오는 6월 29일(일)부터 7월 2일(수)까지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에서 더욱 구체화된다.
1858년 미국 대부흥의 진원지중 하나인 곳, 미국의 독립선언문이 낭독된 도시, 미국이 탄생된 도시 필라델피아 펜실베니아에서 열릴 2008 자마 컨퍼런스는 제3차 영적 대각성 운동 150주년을 기념하며 『주여, 주님의 영광을 내려주소서 : 회개, 화합, 부흥』을 주제로 열린다.
이번 대회에 참석한 코리안-아메리칸 크리스천들은 오너십을 가지고 미국의 부흥과 치유를 위해 모든 세대가 함께 모여 손을 잡고 각성하며 기도하게 될 것이다. 때문에 김춘근 대표는 “JAMA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우리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절대 주권자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누구를 통해서든지 이 나라에 반드시 대부흥을 보내실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나님의 일에 함께 참여하고 그 일에 리더십을 갖자는 것입니다. 1만여명이 함께 모여 손잡고 기도한다고 상상해보십시오. 역사가 반드시 이뤄질 것입니다”라며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자마 컨퍼런스 강순영 총무는 이번 대회를 역대 최대의 규모가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현재 4,000여명이 등록했는데 8,000~10,000명 규모대회가 열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1996년 처음 열렸던 제1회 대회는 약 300명의 대학생들과 젊은 한인 2세들이 5일간 모여 미국을 위한 회개와 기도운동을 일으켰습니다. 그 후 샌디에고, 아틀란타, 캘리포니아, 달라스, 워싱턴 DC 등에서 거대한 기도운동을 일으키며 올해 제8회 대회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단일대회로 최대 참가자를 기록한 것은 5,075명이 참가했던 2005년 달라스 컨퍼런스였습니다.”
회상해보면 2005년 달라스의 여름은 뜨거웠다. 텍사스의 불볕더위 때문이 아니었다. JAMA의 뜨거운 열기가 달라스 한인기독교계를 불같이 타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JAMA 역사상 개교회 최대 참가자수를 기록한 빛내리교회는 550명이 호텔에 투숙하며 JAMA의 일정을 함께 소화했고 당시 빛내리교회의 담임목회자였던 이연길 목사는 JAMA의 뜨거운 체험을 한 이후 교회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JAMA 대회는 우리에게 큰 각성의 기회였을 분만 아니라 우리 교회의 전 세대가 하나로 화합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모든 예배가 영적으로 크게 성장하였다. 또한 우리는 주인의식을 가지고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다.”
JAMA가 교회에 이러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건 JAMA만의 특별한 메시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오너십이다. JAMA에서는 우리 코리안-아메리칸들이, 특히 한인 2세들이 미국 땅에서 소수민족으로 살지 않고 이 나라를 세우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땅의 주인의식을 갖고, 이 나라의 주류에 들어가 이 나라를 신앙으로 다시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주역으로 헌신하도록 강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또한 JAMA는 온 가족이 믿음의 동질성을 회복하고, 가족이 모두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미국에 보내셨는지, 우리 가족의 사명을 무엇인지’를 확인하고 확신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자마가 다른 집회와 다른 가장 큰 이유는 전 세대가 함께 하는 대형집회라는 점과 ‘영적 디즈니랜드’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최고의 강사진, 최상의 찬양인도팀이 이뤄내는 ‘최고의 영적집회’라는 점입니다. 우리 자녀, 아니 전 가족이 평생 잊지 못할 감동과 은혜, 삶의 좌표 설정, 결단과 헌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강순영 JAMA 총무의 말이다.
◇가슴 속에 “오너십, 리더십을 가지고”
뿐만 아니다. 김춘근 대표는 JAMA 컨퍼런스에서 헌신된 대학생들, 대학원생들, 전문인들, 그리고 중고등학생, 초등학생들을 뽑아 대대적으로 40일, 또는 6개월, 1년, 또는 4년동안 훈련시켜 미국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과학, 기술, 기독교 등 각 분야의 리더로 키울 계획이다.
이 전략적 사역은 40일간 집중적으로 리더십을 훈련하는 GLDI(세계 지도자 개발학교, Global Leadership Development Institute)를 통해 이미 시작되었다.
2007년 첫 스타트 테잎을 끊은 GLDI는 장차 미국과 세계의 심장부에 들어가 청교도 신앙을 회복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킬 미래의 지도자들을 양육할 목적으로 JAMA가 오랫동안 기도해왔던 훈련과정이다. 작년의 첫 훈련에서는 19세~25세의 한인 2세들 중 학업성적이 우수하고 신앙이 좋으며 지도자의 자질을 가진 젊은이 96명을 엄선하여 40일간의 강도 높은 지도자 훈련이 이루어졌다.
참가자들은 한결같이 생애에 가장 의미있는 시간이었으며 평생 체험해보지 못한 하나님의 비전을 받고 미래의 지도자로 준비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40일간 평생동안 느껴보지 못한 하나님의 비전과 리더십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일하고는 있었지만, 뭔가 허전하고 목표가 뚜렷하지 못했었는데 이번 GLDI를 통해 한인 2세로서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일과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달라질 겁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96명의 GLDI 학생들을 통해 이 미국, 그리고 전 세계를 변화시키고 교회와 그 주변의 모든 커뮤니티까지 확실히 뒤집어 놓으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Paul Eunjin Lee(24. 뉴욕 거주)
“제 삶에 가장 중요한 때에 하나님께서 저를 GLDI에 보내셨어요. 안 왔으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많은 위대한 만남들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셨구요, 매일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하셨어요. 몸과 마음 그리고 생각을 잘 다스리는 훈련이 되었고 제 존재와 삶의 목적이 얼마나 귀하고 하나님의 뜻 안에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온 세계에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어요.” - Sara Kwon(25, 캘리포니아 거주)
첫 졸업생을 맞으면서 “이 일을 위해 생명을 버려도 조금도 후회하지 않겠다”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던 GLDI의 설립자이자 JAMA의 대표 김춘근 박사는 “자마는 이들을 장차 미국의 주류를 변화시키고 세계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그리스도의 대사들로 세울 것입니다. 최고 실력을 발휘하며 영향력을 주는 그리스도의 변화의 대사를 훈련시켜 가정과 교회와 학교와 지역사회와 직장과 나아가 세계의 변화를 위해서 사용될 수 있는 리더로 만들 것입니다”라며 한인 2세들을 지도자로 발굴해내는 일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칠 것이라고 밝혔다.
GLDI 제2기는 6월 28일 펜실베니아 컨퍼런스에서 열리는 JAMA대회에서부터 시작한다. 올해는 120명의 차세대 주역들이 훈련을 받게 되며 모든 신청자는 엄격한 심사를 통해 입학여부가 결정된다. GLDI에 관한 자세한 문의는 323-933-4055 또는 이메일 info@jamaglobal.com로 하면 된다.
내 자신이 아니라, 내 교회가 아니라, 한인 커뮤니티가 아니라, 한국이 아니라, ‘미국’을 회복시키고, ‘전 세계’를 부흥시키겠다는 비전을 품은 이들, 그들이 바로 JAMA다. 그들을 멈춰버린 미국의 심장에 다시 펄떡이는 생명력을 불어넣겠다고 한다.
그들의 계획은 아침이 되면 깨어버리는 ‘꿈’도 아니고, 내 자신의 성공을 위한 ‘야망’도 아니며, 깨어져도 그만인 ‘공약’도 아니다. JAMA의 ‘비전’은 코리안-아메리칸 크리스천들을 이 땅의 주인으로 만들어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부흥케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소원’이자 ‘명령’인 것이다.
그 명령을 준행하는 행렬에 그대, 동참하고 싶지 아니한가.
최윤주 기자 yunju@wnewskorea.com
원문보기 http://wnewskorea.cafe24.com/bbs/board.php?bo_table=special_report&wr_id=44
